용산 참사를 보면서 바로 내가 희생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럼니스트가 아닌 상인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 아내도 세를 얻어 장사를 하고 있어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겨집니다. 희생자 입장에서 이번 참사의 본질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다 법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한 꼴'입니다.

남의 건물에서 세를 내 장사를 하는 상인(임대상인)이 가게에서 쫓겨 나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일입니다. 임대상인에게 장사 터는 삶의 터전입니다. 장사 터를 뺏기는 것은 삶의 기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번에 희생된 고 이상림옹(70)은 사고현장 뒤편에서 30년 이상 식당을 운영했고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꾸면서 수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희생자 고 양회성씨(55)도 졸지에 거리에 내몰린 철거민이었습니다. 이들은 철거에 따라 권리금과 투자비를 대부분 날리고 장사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상인이 권리금과 투자비, 장사장소를 날리는 것은 인생의 기반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들 임대상인에게는 법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3개 월 치 소득에 준하는 보상금과 이사비용 정도가 지급됩니다. 가족 수에 따라 근로자 평균임금 4개 월 치와 이주비, 임대주택 입주권이 지급되는 주거세입자에게도 훨씬 못 미치는 보상이 지급됩니다. 삶의 터전을 상실한데 대한 보상치고는 턱없이 적은 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상인들은 법에 따른 보상비를 지급받고 떠나거나 아니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법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도심재생사업(뉴 타운, 재개발, 재건축등)에 대한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철거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칩니다. 재개발조합이나 시공사는 사업을 빨리 진행해야 이익이 많아지기 때문에 합법적인 보상비를 지급하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세입자를 몰아냅니다.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물리력을 행사하고 세입자들이 충돌 끝에 밀려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많이 보셨을 겁니다.

용역업체가 세입자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결국에는 경찰이 동원돼 세입자들을 몰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은 용인됩니다. 세입자들은 법에 정한 보상금을 받고도 더 욕심을 내는 '떼꾼'으로 규정되고 경찰과 용역업체직원들은 건설업자와 재개발조합의 합법적인 권리를 '떼꾼'으로부터 수호해주는 법의 집행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조그만 보상비를 받고 떠나시겠습니까, 아니면 고 이상림옹처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습니까. 개인의 선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에서도 전체 세입자 890명 가운데 763명이 보상을 받고 이사를 갔습니다. 문제는 현행법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탄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법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지키자고 결심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공권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이 부당하다며 살려달라고,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야 합니다. 세입자가 옳다면 세입자와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토록 법을 고치거나 중재를 해야 합니다. 또 세입자는 옳지만 사업자가 감당할 능력이 없고 공익을 위해 사업이 꼭 필요하다면 재정부담을 통해 세입자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법은 애초에 불완전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법만으로 세상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법부만 있으면 되지 국회와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경찰이 나서 법을 수호하는 파수꾼을 자처하며 모든 갈등을 형식적 법 논리로 해결하려 하면 민주사회가 아닌 경찰국가로 전락할 것입니다. 6명의 인명이 희생된 상태에서도 민중의 지팡이이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경찰수뇌가 끝까지 법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지속한다면 불행한 참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수는 770만 명에 달합니다. 자기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임대상인으로 추정됩니다. 임대상인은 재개발이 아니라도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거액을 투자해도 계약기간이 만료(2년, 임대차보호법대상 소상인은 5년)되면 시설투자비를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건물주가 요구하면 집을 비워줘야 합니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상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세입자가 장사를 계속하기를 원하는데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쫒아내는 건물주는 많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래도 임대상인은 법의 보호가 아닌 건물주의 선의에 의지해 삶의 터전을 유지할  뿐이고 냉혹한 건물주를 만나 쫒겨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재개발사업이 시행되면 얘기가 또 달라집니다. 건물주의 모임인 조합과 건설업자는 이익극대화를 위해 법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임대상인들은 유일하게 의지하던 건물주의 선의를 상실하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됩니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30%수준으로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사회보장이 제대로 안되고 외환위기 이후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내몰린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창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외일 수 없습니다. 퇴직공무원, 대기업의 중견간부부터 취직을 못해 장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들까지 장사를 시작하는 그 순간, 이번 사건의 희생자처럼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릴 위험에 처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수  십년 간 한곳에서 장사를 한 사람, 퇴직금과 저금을 깨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창업전선에 뛰어든 사람. 그들에게 가게는 삶의 모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가게를 뺏을 때 그들은 당연히 가게를 지켜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국가는, 대통령은, 국회는, 언론은, 경찰은 이들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 정답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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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창환

경제위기에서 최진실 자살까지..암울한 세상의 희망찾기

온통 암울한 뉴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비롯해 거품붕괴로 아수라장이 되버린 세계경제. 최진실 씨의 자살까지. 답답하고 암울한 뉴스가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저는 최진실 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깊은 인간적 고충은 알 수 없지만 정말 강하고 어려움을 잘 극복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좌절을 극복한 뒤 과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변신을 이뤄내는 최 씨를 저는 연예인이 아닌 인간으로 좋아하고 대견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최 씨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선뜻 믿기지 않습니다. 최진실 씨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그의 가족들이 큰 슬픔을 잘 이겨내기를 빕니다.

이런 때는 희망을 찾고 싶어집니다. 또 하나의 답답한 글로 어둠을 덧칠하기보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어집니다.

어둠은 현실이지만 미래는 희망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말해줍니다. 경제위기는 극복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대체로 좋았던 시절(호황)이 나쁜 시절(불황)보다 기간이 길었습니다. 지금은 양극화로 고생하지만 빈부격차는 꾸준히 줄어온 게 역사적 진실입니다.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어 고생하지만 일자리의 종류와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왔습니다.

우리 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바리스타, 네일아티스트,  쇼핑호스트,  웨딩플레너,  파티플레너 등은 이제는 익숙해진 새로운 직업들입니다. 새로운 직업이란 새로운 봉사자의 출현을 뜻합니다.  직업이란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댓가를 받는 봉사'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보살핌을 받는 종류가 다양해지고 삶에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서로 봉사하고 보살피는 행위를 늘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업들을 우리들은 지금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몇종류의 신발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 사용하신 적이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운동화 한 켤레와 실내화 하나면 족했습니다. 지금은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등산화, 스키화, 베드민턴화, 조깅화, 골프화, 물놀이용 스니커즈, 구두 등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신발가게 한 곳이 아닌 전문점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신발장 속에 진열돼 있는 신발들은 우리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풍요로워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증거물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양극화와 부의 집중은  영원한 것이 아닌, 잠시 잘못된 외도라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예전에 유럽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여행은 영국(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파리) 이탈리아(로마) 그리스(아테네)를 거쳐 이집트로 이어졌습니다. 유럽문명이 전파된 경로와 반대방향입니다. 여행일정이 문명의 전달경로를 거슬러 진행되는 이유는 그래야만 계속 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구경을 하면 맛난 음식을 먼저 먹고 맛없는 음식을 나중에 먹는 것처럼 여행이 싱겁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사적 유물은 시대를 거슬러 갈수록 그 규모가 훨씬 웅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룩소와 카르낙신전 유물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보다 그 규모가 웅대하고 이탈리아의 유적은 프랑스의 유물보다 규모가 장대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갈수록 인간이 만든 유적의 규모가 장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집중돼 있던 부와 권력이 역사가 흐르면서 점차로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이 고대 이집트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지만 영국의 여왕과 수상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나라의 부와 역량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으로 평범한 일반인들이 차지하는 몫은 그 절대치 뿐 아니라 비율 자체도 높아졌습니다. 때문에 웅장한 건축물은 적어졌지만 다양한 문화적 유산이 현대로 올수록 많아지는 것입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부가 일부에 집중 하는 게 아니라 골고루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다는 게 역사가 보여준 진실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빈부격차의 확대, 부의 집중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경제적 자유와 타인에 대한 봉사와 보살핌은 항상 확대돼 왔다는 사실을  바로 우리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견디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가 직무를 맡긴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제 역할을 하면 견디기도 쉽고 좋은 날도 빨리 오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새로운 선택의 시기는 또 다가오고 우리 민초들은 꾸준하게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제 주변도 많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부터 한번 꼭 안아줄 생각입니다. 주변동료와 가족들의 손을 꼭 잡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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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창환

미국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붕괴 신호탄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경제칼럼을 쓰기로 마음먹고 제목을 '생활속의 경제이야기'로 정했었는데 미국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의 위기로 우리 증시가 폭락하고 9시 뉴스에서 20분 가량이 미국의 위기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는데 쓰였습니다. 지구촌, 세계화란 단어가 정말 실감날 정도로 우리는 서로 얽혀 살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전기가 될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뭔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 경제위기도 우리생활의 일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살짝 곁눈질을 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마침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탄입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서방의 맹주로 군림했고 냉전에서 소련을 제압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팍스아메리카 시대가 저무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당장 망하거나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금새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달러와 군사력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지구를 지배해온 절대 권력이 어쩔 수 없이 무장을 해체하는 과정의 마지막 한 장면(최후라고 보장할 수는 없음)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 온 힘은 '달러'와 '군사력'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달러와 군사력입니다. 이 중 달러의 힘은 군사력보다 더 강합니다. 군사력을 뒷받침 하는 게 바로 달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팍스아메리카의 역사는 미 달러화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인 1945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시골마을 브레튼우즈. 전후 통화제도를 둘러싼 브레튼우즈 회동은 미국의 의도대로 끝납니다. 금을 대신해 달러가 통화간의 교환수단으로 인정됩니다. 단, 미국은 다른 나라가 요구할 경우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를 내주기로 약속합니다. 달러를 매개로 각 통화간의 교환비율을 정하는 고정 환율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은 달러를 금과 교환해주기로 약속하는 달러 중심의 변형된 금본위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미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막대한 재정적자로 달러화는 그 뒤 지속적으로  약해져 왔습니다. 달러가 많이 풀리자 많은 나라들이 금으로 교환할 것을 요구했고 닉슨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하고 고정환율제 아래서 달러를 평가절하(스미소니언협약)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76년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킹스턴체제)로 전환하고 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값을 폭락시킵니다.

설명이 좀 복잡합니다. 한 마디로 달러는 굴곡은 있었지만  값어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도 기축통화 노릇을 해 왔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 금값은 국제시장에서 온스당 779달러 60센트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63년 전(1온스당 35달러)에 비해 달러의 값어치가  22분의 1로 쫄아 든 것입니다.

미국의 달러 가치가 이처럼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번에 발생한 금융위기의 원인과 63년간 달러가치가 추락한 이유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빚(채무)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는 빚(재정적자)에 의지해 나라를 경영하고 미국 국민도 빚(모기지론, 할부금융)으로 생활을 하고 투자은행도 빚(레버리지)으로 투자를 하다가 이런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외상이라면 소라도 잡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집도 잡아먹고 회사도 잡아먹고 나라도 잡아먹을 지경에 이른 상태입니다.

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화에서 출발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예측할 능력도, 자료도 없습니다. 그러나 빚에 의지하는 살림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민들에게 지난 10년간 주택은 단순한 거주 수단만이 아니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ATM)란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주택 가격의 90% 이상을 융자받아 집을 사고 값이 오르면 추가로 대출을 받아 소비에 사용해 왔습니다. 저금리정책과 늘어난 돈 때문에 집값은 지속적으로 올라 좋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국민들이 대출을 받아 소비하면서 엄청난 양을 수입합니다. 해마다 수천억달러씩 무역적자가 쌓입니다. 외국에 대한 빚입니다. 미국 연방은행이 발행한 달러는 종이입니다. 절대강국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른 물건을 가질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순간 달러는 종이로 변합니다. 애써 만든 물건을, 서비스를 미국에 주면서 종이를 받으며 만족하는 이유는 바로 신뢰에 있습니다.

미국의 부채 규모는 이미 10조달러가 넘고 21개월에 1조달러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도 수천억달러에 달하고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만도 2003년 한해 3천30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엄청난 부채가 있어도 견딘 이유도 '그래도 미국인데' 하는 신뢰에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이와 프래디맥에 2천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외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이들 기관을 미국 정부로 생각하고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패니매이와 프래디맥의 채권을 보유한 기관들은 미국 정부의 빚 상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같은 기대와 신뢰를 깨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미국정부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뢰에는 이미 금이가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걱정 대상이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민간의 과소비는 미국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요소라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세계 3-5위의 투자은행이 몰락하고 미국 최대 보험사 AIG의 파산가능성까지 논의될 정도로 미국의 병은 깊고 미국 정부조차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약화된 제조업을 대신해 세계시장을 누비던 금융산업 특히 투자금융사들이 몰락함에 따라  미국의 외국에 대한 시장개방 전략은 큰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금융시장 개방을 막무가내로 요구할 명분이 줄어들었고 개방된 시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할 투자금융사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위기 극복은 '빚 잔치'부터

미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빚 잔치를 해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달러화를 팔고 다른 투자수단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 달러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미국 국민들은 무엇인가를 팔아 달러를 다시 사줘야 합니다.  헐값에 미국의 자산을 외국 자본에 넘겨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고통의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 최근 다녀온 친구의 전언입니다. 마이애미도 망했고 LA도 썰렁한데 뉴욕은 활기차게 돌아가 이유를 물었답니다. 아랍, 중국, 유럽 등지에서 현금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와 값싸게 나온 물건이 없나 찾고 흥정하고 있는 게 이유라는 답을 들었답니다.

자본주의 역사에 수많은 거품이 있었고 전우의 시체를 넘어 경제시스템은 발전해 왔습니다.

금융시장은 항상 탐욕과 망각과 몰락을 반복하며 그런대로 한걸음씩 전진해 왔습니다. 미국의 위기도, 이에 따른 세계경제의 위기도 예전에 그랬듯이 종말로 연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이번 금융시장의 위기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신뢰가 결정적으로 훼손돼 팍스아메리카의 영화가 이젠 서산에 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의 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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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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